메인드인 코리아, 권력 스릴러의 귀환
2026년, 한국 드라마계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했다. 바로 메인드인 코리아다. 자본과 권력, 정의와 타협, 인간의 욕망과 신념이 충돌하는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 대결을 넘어, 시대와 구조, 인간 그 자체를 파고든다.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, 그 치밀한 감정선과 서사 구조를 지금부터 짚어보려한다.
야망을 품은 남자, 그가 마주한 세계
백기태는 우리가 쉽게 ‘악인’이라 부를 수 없는 인물이다. 그는 스스로를 희생자라 말한다. 이 사회가 만든 괴물일 뿐이라고. 처음엔 그 말이 핑계처럼 들렸지만,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. 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고, 사회가 그에게 허락한 건 오직 결과뿐이었다. 그래서 그는 과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 말한다. 목적이 선하면 수단은 정당화된다는 그의 논리는 오싹하면서도, 한편으로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. 그가 손에 넣고자 한 건 단순한 부도, 권력도 아니었다. 그가 설계한 건 ‘대한민국’ 자체였다. 정치, 경제, 언론, 사법까지 — 모든 구조를 다시 짜겠다는 그의 야망은 그저 이기적인 욕망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, 냉정했다. 그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인맥, 계산된 행동 하나로 무너지는 사람들, 그렇게 쌓아올린 권력의 피라미드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지켜보게 된다.
무너진 정의, 다시 그 자리를 찾기 위해
검사 장건영은 이상주의자였다. 현실은 그에게 수없이 말한다.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. 그가 믿었던 동료들은 등 돌리고, 상부는 정치적 계산으로 사건을 덮으려 한다. 하지만 장건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. 중요한 건 ‘이기는 싸움’이 아니라, ‘포기하지 않는 싸움’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. 백기태를 마주한 장건영은 정의란 단어 앞에 다시 서게 된다. 그는 선택한다. 출세를 포기하고, 조직을 벗어나며, 모든 걸 걸고 진실을 마주하겠다고.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. 조사실 한쪽에 혼자 앉은 장건영이 조용히 말한다. “나도 알고 있다. 이 싸움은 지는 싸움이라는 걸. 하지만 누군가는 져야 할 싸움도 있는 법이다.” 이 대사는 단순한 각오가 아니다. 누군가는 무너져야, 그 틈에 진실이 드러난다는 걸 알기에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. 장건영은 ‘정의로운 인물’이라는 단순한 틀을 깨고, 스스로의 상처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상으로 완성된다. 그가 있어 이 드라마는 더 깊어진다.
시대와 인간,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서사
메인드인 코리아가 특별한 건 이야기의 중심에 ‘구조’가 있기 때문이다. 드라마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,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한다. 백기태는 괴물이었지만, 그 괴물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냈다. 장건영은 영웅처럼 보이지만, 그는 무수히 흔들리고 무너졌던 사람이다. 결국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한 가지다. “이 사회에서 진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?” 언론은 침묵하고, 법은 권력 앞에 흔들린다. 국민은 무력하고, 정의는 외면당한다. 이 드라마는 우리가 외면했던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. “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?” 시청자는 극을 보며 어느 한쪽에 완전히 편들 수 없게 된다. 모든 인물들이 너무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.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,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다. 그저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. 그 선택들이 모여 구조를 만들고, 구조는 결국 개인을 짓누른다.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건영이 남긴 말은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을 요약한다. “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. 하지만 불편함 없이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.” 메인드인 코리아는 이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를 묻는다.
메인드인 코리아는 마냥 통쾌하지도, 깔끔하게 정의가 승리하지도 않는다.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,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. 누군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.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우리가 외면해왔던 진짜 질문이 숨어 있다. 만약 당신이 백기태였다면? 혹은 장건영이었다면? 이 드라마는 정답을 주지 않는다. 대신 질문을 던진다. 그 질문이야말로 이 시대 드라마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.
